예수님께서는 3년의 공생애와 십자가 죽음 이후 3일만에 부활하시고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그 이후에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승천하셨지요. 이런 이야기를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떻게 사람이 죽고 나서 다시 3일만에 살아나서 제자들과 함께 음식도 먹고, 생활을 하시며 40일을 살 수 있었 을까? 그리고 그 몸을 가지고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올라가신 곳이 대기권인가? 아니면, 성층권, 중간권, 열권일까? 우리가 타는 여객기는 지상 에서 10-12km정도 떨어진 대기권에서 움직입니다. 비행기의 상태에 따라 대기권 위에 있는 성층권 아래쪽 정도에서 비행을 한다 합니다. 그 정도도 인간이 혼자 호흡하고 존재한다는 것은 심히 어렵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 가셨을 때, 대기권을 지나 성층권, 중간권을 넘어 열권까지 가셨을까? 하는 등의 질문이 생기면, 더 이상 상상을 할 수가 없고, 말이 안되는 것이구나 할테니 더이상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귀담아 듣지 않게 되겠지요.
내가 아는 지식과 경험의 수준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우리는 도저히 하나님의 존재를 파악할 수도 없고,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현실적인 부분을 영적인 세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요. 그러나 현실만을 강조하고, 영적인 면을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공부를 많이 하는 직종을 따지면, 몸을 고치는 의사가 단연 으뜸일 것입니다. 휴스턴에서 사역할 때 지역의 특성상, 많은 의사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과 대화할 때 공통점을 발견 했지요. 그것은 그들이 사람을 잘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 알지,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모른다며 오히려 더욱 자신없어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많이 공부하고, 그렇게 많은 해부와 수술을 하게 될 수록, 자신이 모르는 영역을 더욱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을 필드에 있는 분들은 절감합니다. 인간의 신비이지요. 인간의 세포를 연구하면 할수록,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 움직이는 일, 불필요한 요소를 공격해서 정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등이 너무나도 신기한거죠. 생체의 정화작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병에 걸리고, 생명력이 서서히 사라져가게 되는데 이런 불치병 앞에서 의사가 이해할 수 없는 “기적”같은 것들이 일어나면, 더욱더 “인간은 다 알 수 없다”라고 인정하게 되지요.
우리의 몸도 제대로 모르는 한계를 가진 우리가, 어찌 우주를 만드시고,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유한한 지식으로 이해를 할 수 있을까요? 얼마전 우리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한 형제님이, “양자역학”을 설명하면서 지금의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양자역학인데, 믿음도 그런 것 같다라는 간증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경험한 것, 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고 무지한 일이라는 고백. 이 고백이 삶을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다른말로 하면, 세상을 향한 겸손이지요. 이 겸손함의 고백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현실을 뛰어넘는 “믿음”에의 과정을 배워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해되지 않지만 믿어 보는 것, 상상할 수 없지만 그 존재를 기대하는 일. 오늘 세례 받는 오혁준형제, 이주연자매. 사랑하는 두 청년은 이 현실을 뛰어넘는 믿음의 첫 단추를 맞추는 분들입니다. 이들의 시작을 격려하며, 축복합니다. 모두가 함께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2023년 9월3일 백성지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