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자세
19세기 미국 서부. 자유토지법(Homestead Act) 한 장의 신청서를 들고 마차에 몸을 실은 이들 에게 그 땅은 "개척"이었습니다. 5년을 버티면 160에이커의 땅이 내 이름으로 등록되는,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간, 같은 땅 위에서 인디언들에게 그것은 "침략"이었습 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전에서 쫓겨나 보호구역이라는 이름의 울타리 안으로 몰려갔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권이 유린당했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꿈의 성취였던 사건이, 다른 한 사람 에게는 삶의 파괴가 되었습니다. 역사는 이렇듯 언제나 두 얼굴을 가집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도 다르지 않습니다. 양반과 노비로 나뉘어 있던 조선, 그리고 나라의 주권을 강탈당한 일제강점기. 그 시절 일제와 손잡고 권세를 누렸던 이들의 후손이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우리 안에는 억울함과 괴로움이 함께 올라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아픔을 몸으로 겪었던 세대는 이제 이 땅에 없습니다. 모두가 그 체제속에 태어나 자라며 "미국인"으로, 또는 오늘의“한국인"으로 살아갑니다. 더 이상 누구를 탓할 대상도, 되돌릴 방법도 마땅치 않은 세상이 되어버렸지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질문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억울한 역사의 열매 앞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까?"
1. 역사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아덴 아레오바고 광장, 정복과 지배로 얼룩진 로마 제국 한복판에서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사도행전 17:26) 어느 민족이 어느 땅, 어떤 때에 나고 죽는지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침략과 유린을 정당화하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인간의 죄로 얼룩진 역사까지도 하나님이 손에서 놓지 않으시고 더 크신 목적으로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고백처럼 말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창세기 50:20).
2. 우리는 역사의 심판자가 아니라, 오늘의 청지기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시대를 살지 않았고, 그 땅을 되돌릴 힘도 없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는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사 먹고 마시게 하시며 그가 하는 모든 수고에서 낙을 누리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전도서 3:13) 우리의 몫은 지나간 억울함을 판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맡겨진 자리에서 신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국경을 넘는 이들,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을 향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심판이 아니라 기도와 섬김입니다.
3.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며, 기도하는 신앙의 결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사슬에 매인 채로 이렇게 썼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립보서 4:6) 그가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처지가 아니라 역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아픔과 오늘의 눈물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 -이 가정, 이 교회, 이 사역- 을 향한 감사와 기쁨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신앙의 결단입니다.
세상은 완전한 정의를 이루지 못한 채로 흘러갑니다. 개척자에게는 기회였던 것이 원주민에게는 재앙이었듯, 오늘도 누군가에게는 새 삶을 향한 필사적인 몸부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죽음과 무너짐으로 끝납니다. 우리는 그 복잡한 역사의 어느 한 지점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이 과거와 오늘의 억울함에만 머무를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놓치게 됩니다. 반대로, 우리의 시선이 오직 역사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향할 때, 우리는 지나간 아픔과 오늘의 눈물을 정직하게 기억하면서도, 우리에게 맡겨진 삶을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낼 힘을 얻습니다. 역사의 주인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샬롬.
August 02, Pastor’s Table, 백성지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