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초파리 한 마리
13년 전 휴스턴에서 사역할 때, 저희 목장에 카이스트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MD앤더슨에 포스닥으로 연구하러 온 가정이 있었습니다. 현재 휴스턴 메디컬센터에서 교수로 일하며 목자로 섬기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 형제가 학위를 받은 주제는 초파리였습니다. 우리 삶에서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 아니 오히려 성가시기만 한 그 작은 벌레를 연구해서 박사가 되고, 포스닥을 거쳐 지금은 교수가 되었지요. 그때 형제가 설명해 주었던 것들이 기억납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초파리는 전 세계에 4천여 종이 있고, 변이가 잘 일어나고 생식 주기가 짧아서 연구자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생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그 이야기가 떠오른 이유는, 얼마 전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 초파리가 성가시게 나타났기 때문 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전 집에 오히려 초파리가 더 많았던 것 같기도 한데, 그 집은 앞뒤로 큰 마당과 호수가 이어져 있고 문도 자주 열어 두었기에 신경이 덜 쓰였나 봅니다. 그런데 지금은 밝은 인테리어의 공간에 문을 닫고 지내다 보니, 좁은 공간과 행동반경 안에 갇혀 있는 몇 마리가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다 잡았다 싶으면 또 나타나는 이 녀석들을 보며 오래전 목장 식구 였던 그 형제의 이야기까지 떠올라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지요.
찾아보니, 초파리는 밖에서 날아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집 안 어딘가에서 알이 부화해서 계속 새로 생겨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몇 마리를 아무리 잡아도 소용이 없는 이유가, 물러진 과일 하나, 배수구에 낀 유기물 한 겹, 뚜껑이 살짝 열린 음식물 쓰레기통과 같은 작은 발생원들을 모두 없애지 않으면, 성충을 다 없애고도 며칠 안에 또 다시 개체가 생겨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퇴치보다 예방이 중요하다는 말은,결국 원인을 없애지 않고서는 결과를 다스릴 수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작은 벌레와 씨름하다가 문득 성경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죽은 파리들이 향기름을 악취가 나게 만드는 것 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를 난처하게 만드느니라" (전도서 10:1) 성경에 파리가 등장 하는 구절이 많지 않은데, 이 말씀은 정확히 저희 집 부엌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을 살피면 이 구절에는 동사가 두 개 겹쳐 쓰입니다. 하나는 "악취가 나게 하다" 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거품이 일게 하다,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죽은 파리 한 두 마리가 단순히 냄새만 피우는 것이 아니라, 향유 전체를 발효시키고 부패시켜 그 고요하고 아름다운 상태를 완전히 뒤바꿔 놓는다는 그림입니다. 솔로몬은 바로 앞 구절에서 "한 죄인이 많은 선을 무너뜨린다"(전도서 9:18)고 말했는데, 10장 1절은 그 진리를 우리 코앞에 가져다 놓습니다. 지혜와 존귀를 오래 쌓아온 사람도, 작은 우매함 하나로 그 향기를 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향유였을까요? 성경 시대의 향유는 올리브 기름이나 동물성 지방을 기본 재료로 삼아, 그 안에 몰약이나 나드 같은 향기 나는 식물 성분을 우려내어 만들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부었던 값비싼 나드 향유도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재료 자체에 있었습니다. 기름과 지방은 본질적으로 유기물이라 쉽게 산패합니다. 여기에 죽은 파리 같은 이물질이 들어가면, 그것이 부패균의 먹이가 되어 발효와 부패가 연쇄적으로 진행됩니다. 죽은 파리 몇 마리가 향유를 망친 다는 말은 은유가 아니라, 당시 향유 보관법으로는 실제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향수는 다릅니다. 대부분 알코올을 베이스로 하는데, 알코올 자체가 강력한 방부제 작용을 하기 때문에 죽은 파리 몇 마리가 들어간다고 해서 향수 전체가 부패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 니다. 재료의 구조 자체가 작은 오염을 견뎌내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오늘 우리 신앙의 질문을 하나 발견합니다. 우리 삶은 성경 시대의 향유와 같은가. 아니면, 오늘날의 향수와 같은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알코올(술이 아닙니다^^;)과 같은, 성령의 임재, 날마다 새롭게 하는 말씀, 정직한 회개의 습관 이 흐르고 있다면, 작은 실수 하나, 작은 말 한마디가 우리 전체를 무너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없다면, 옛날 향유처럼 우리는 아주 작은 것 하나에도 쉽게 부패하고 말 것입니다.
또한, 초파리에게서 배운 하나의 교훈이 있습니다. 발생원을 없애지 않으면 아무리 수고를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잘못 하나를 고백하고 회개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잘못이 계속 자라나던 자리, 방치해 둔 마음의 습관, 돌보지 않은 관계, 정리하지 않은 욕심 등, 그 발생원을 찾아 없애지 않으면, 우리는 같은 자리에서 또다시 넘어지게 됩니다. 우리 모두 눈에 보이는 파리 몇 마리를 잡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그 파리가 자꾸 생겨나는 자리가 어디인지 주님 앞에 정직하게 찾아보는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까운 거리에서 몇 마리 안 되는 초파리에 유난히 더 신경이 쓰이듯, 우리 삶이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더 정직하게 다가설수록 우리 안의 작은 우매함도 그만큼 더 선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맙시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 빛나도록 밝히시는 은혜의 과정임을 기억하고, 매순간 함께 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죽은 파리 하나 없는, 향기로운 향유 같은 삶을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샬롬.
September 6, Pastor’s Table, 백성지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