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 입은 꼰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겉으로는 젊어 보이나, 속은 꼰대짓을 하는 사람을 비꼬아서 하는 말입니다. 부정적인 표현이지요. 혹시 여러분이 그런 사람은 아닌지요? “꼰대”라는 표현이 꼭 나이 많은 어른들에게 국한된 말은 아닙니다. 요즘은 청년들도 한 살이라도 많은 선배가 후배에게 과한 잔소리를 하면, “꼰대 같다”고 놀림 당하는 걸 보면 이는 무척이나 상대적인 표현인 것 같습니다. 20대 후반이 지난 형제님들은 모두 한번쯤 들어보셨지요?
그런데 저는 이 “꼰대”라는 표현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꼰대가 체득한 사회적 경험과 헌신의 땀들, 그 노력의 시간들이 결코 함부로 평가받거나 가볍게 판단 받을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말 “꼬~온대” 같은 분들도 간혹 만나게 됩니다만, 요즘 세대에게는 아예 잔소리를 하지 않는 것이 꼰대가 되지 않는 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고 싶은 말과 들려줘야 할 교훈들을 무음처리해 버린다면, 심각한 사회적 무책임과 무관심으로 인해 예의와 배려 없는 수평적인 관계만 난무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지혜롭고 노련한 어른들의 분명하고 따끔한 질책은 젊은이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나침반과도 같습니다.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에서 반듯한 길잡이가 되어줄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보다 나은 삶의 경험을 선물하지요.
이번주에, 수 없이 읽고 설교했던 여호수아서 마지막 24장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노인 여호수아의 마음이 얼마나 애절한가? 꼰대같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들려 줘야하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 교훈들을 온 맘을 다해서 외치고 있는 그의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백성들을 세겜에 모이게 합니다. 그리고 절절하게 부탁합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 요단강을 건너게 하신 하나님, 여리고 성을 무찌른 하나님, 일구지도 세우지도 않은 성읍을 주신 하나님, 심지도 않은 포도밭 올리브 밭에서 열매를 따 먹게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수 24:2-13 요약)합니다. 그리고 15절에 강권하여 말합니다. “과거의 신을 섬길 것인지?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라”(수 24:15) 그러면서 여호수아는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길 것이다”(15)라고 선포합니다.
자 이쯤되면, 노인 여호수아는 꼰대입니까? 꼰대가 아닙니까? 여호수아의 권면은 꼰대의 말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만 믿으라는 말이 꼰대의 말이 될 수 있습니까? 시대와 세대의 변화와 상관없이 절대적으로 들려져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퇴색되거나 힘을 잃은 “잔소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내일, 바로 다음 날 하루의 삶과 죽음에 직결된 생명암호와 같이 소중하게 들려지고 받아들여져 간직해야 할 “큰소리” 이지요.
처음 말씀드린 표현을 기억하시나요? “청바지 입은 푸른 꼰대.” 청바지를 입었다는 것은 늙어 보이거나 문화에 뒤떨어지는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푸른 꼰대라는 것은 외부적으로 보여지는 늙고 젊은 생물학적인 나이가 아니라, 주님 향한 끝없는 열정을 가진 청년의 내적인 마음을 간직한 모습을 말합니다. 지난주 설교 후에 함께 부른 “그리스도의 계절” 이라는 찬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예수의 꿈을 꾸고, 인류의 구원의 환상을 보며, 한 손에 복음 들고 한 손에 사랑을 들고 온 땅 구석 구석 누비는 나라.” 푸른 꼰대가 가득한 나라이겠지요. 우리 엘드림 교회가 계속해서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는 길은, 바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복음 안에서 엘드림 성도님 한 분 한 분의 삶이 반듯하게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붙드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아버지의 꿈을 성취하는 일입니다. 아버지의 꿈을 함께 이뤄가는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 청바지 입은 푸른 꼰대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사랑합니다.
2023년 5월7일 백성지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