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많이 변했다고들 합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도 예외는 아니지요. 제가 18년 전에 미국에 왔을 때만 해도 지금보다는 배려와 여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 곳 미국도 점점 각박해져 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구촌 어디서나 당연했던 모습들,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어려울 때 같이 돕고, 힘든 일 함께 하며 이웃사촌이란 말들로 따뜻하게 표현되던 모습들이, 이제는 매스컴에서 뉴스나 해외토픽 등으로 보도되는 것을 보며 씁쓸할 때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점점 더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 되어가기에 그렇다고 말들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세상은 점점 발전했고 더 발전할 것이며, 새로운 먹을 것과 입을 것들로 넘쳐나지요. 그러니 사실, 이 모든 각박함의 원인은 “우리의 마음”에 있습니다. 세월이 갈 수록 나 자신만이 소중하고, 나를 중심으로 필요한 이들 에게만 사랑이 나눠지며, 그 사랑조차도 오래 참는 마음 없이 인스턴트 같은 온도와 깊이의 관계 들만 넘쳐나지요. 이익관계로 맺어진 마음들은 서로를 무정함과 무관심으로 몰아가서 마침내 서로의 인격과 삶을 파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세상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건강한 마음을 가진 모두가 친구가 되었고, 모두가 충분한 사랑을 주고받는 사이였지요. 그러나 그 안에 죄가 들어옴으로 나의 정체성에 대한 균형이 깨어졌고, 나에게 피해를 주는 상대는 적이 되었으며, 미움과 시기 질투 외로움과 곤고함의 삶이 우리의 시간속에 파고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의 이웃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셨을 때, 그 대답은 놀랍게도 “사마리아인” 이었습니다. 그 당시 풍습으로 서로 상종도 하지 않았던 부류의 사람을 이웃이라 말씀하시면서 섬김의 패러다임에 대한 전환을 불러일으키신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동일하게 물어보십니다. “너의 이웃은 누구인가?”, 그리고 “너는 오늘 어떤 이웃인가?” 사랑하는 엘드림 공동체 여러분,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나요? ‘저 인간은 아니야, 저 사람은 나와 급이 달라, 저 사람은 내가 섬길 수 있겠어…’등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우리 오늘도 이웃과의 관계를 저울질 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내 마음의 주류와 비주류의 관계를 만들고 두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판단의 행위를 교만한 눈과 말로 해대고 있지는 않는지요?
세상이 점점 악해져 간다고들 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자리에서 우리가 세상을 다스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주인 바뀐 세상이 엉망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우리에게 호흡을 주시고, 건강을 주시고, 매일 하루의 시간과 삶의 현장을 주시고 함께 살아갈 이웃을 주신 분, 그 분을 기억하며 살지 않으면 악해져 가는 세상에서 구원받을 길이 없습니다. 평안할 길이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때가 악하니 시간을 아껴서 주님의 사랑을 전하라 하십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이 곳 미국에 살아가는 목적을 분명히 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한 행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현실이 너무 막막해서, 앞으로의 미래가 너무 막연해서 그런 이상적인 생각은 할 수가 없다 하시나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우리는 모두 예외 없이 바쁩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스스로가 잘 알고 있지요. 이 모든 각박함의 원인은 “우리의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요. 어쩌면, 세상이 악해져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악해져 가는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이 지금 이곳에 나를 보내신 이유, 한 영혼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이유나 핑계를 대지 않고 이웃을 위해 손 한번 더 내 밀 수 있는 여유가 우리에게 있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2023년 4월30일 백성지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