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가족이 있고, 형제 자매가 있습니다. 요즘 독자 혹은 독녀로 살아가는 분에게는 조금 다른 얘기가 되겠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집집마다 최소한 두 명 이상의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작은 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형, 누나, 동생이 오손도손 살던 시기, 오후가 되면 동네마다 아이들이 북적이던 시절이었지요. 특별한 놀이문화가 없었어도 좁은 골목에서 뛰어놀거나, 구슬치기, 오징어, 땅따먹기 등… 재미난 놀이를 하며 즐거워했지요. 아버지가 목회를 시작하면서 삼형제였던 우리는 그 좁은 골목이 있던 도시보다 더 외진 시골로 이사를 가야했습니다. 하루에 한대 밖에 없는 버스와 검은색 손잡이를 돌려서 받는 전화기. (그것도 특별한 사람들 집에만 있었던 전화기였습니다.) 컬러 TV가 있었던 집은 저녁만 되면 이웃들이 찾아와서 티비를 함께 보느라고 발디딜 틈이 없었던 정겨운 시골풍경. 기와집보다는 짚볏단으로 만든 초가집이 대부분이었던 1979년-80년 즈음에, 저와 형은 경상북도 영천군 대창면 산골에서 뛰어놀던 순박한 촌아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의 모든 풍경들이 낙후되고, 불편하고, 추웠던 기억보다는 모든 것이 그립고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형제가 아버지의 목회 때문에 시골에서 공부하게 된 것이 못내 미안하셨는지 부모님은 저와 형이 태어났던 할머님댁, 대구로 유학을 보내셨습니다. 할머님께서는 그 당시에는 25평 작은 집이지만 여러 개의 방이 있었기에, 각 방마다 월세를 주고 계셨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작은 방을 저와 형이 사용하며 할머니와 같이 생활했지요. 초등학교 5학년부터 대학을 진학할 때까지 형과 함께 좁은 방에서 지내면서 수많은 사계절을 보냈지요. 청소년 시절에는 다른 특별한 문화가 없었기에, 아버지께서 사주신 빨간색 소형 카세트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저녁 10시만 되면 “이종환의 별이 빛나는 밤”을 듣곤 했습니다.(나중에는 이문세가 이어서 했… 다들, 모르시지요?^^) 음악과 시를 듣고, 여러 인생들의 사연들을 청취하며 풋풋한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에 제게 하나뿐인 형이 미국집을 방문했습니다. 그 어렸던 촌아이가 아니라, 50대 중반이 된 중년 가장으로 우리집을 방문했습니다. 18년간 휴가 한번 없이 병원에서 성실하게 근무해 온 형이 3주간의 휴가를 내어 자녀들과 사위(시온, 가은, 원찬), 그리고 동생네 가족을 만나러 온 발걸음이 어찌나 반가운지! 짧은 여정 속에 자녀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저와도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도 형도 특별히 현란한 뉴욕 맨하탄보다는, 생명이 있고 숨이 있는 자연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도착하자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동네를 산책하고, 집 가까이 Winter Garden Downtown에서 하이킹을 했습니다. State park에 가서 자연을 보며 걷고 또 걸었습니다.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45년 전 시골 대창에서 뛰어놀던 정감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좁은 방에서 라디오 방송을 듣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 볼 여유도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온 두 형제가 중년이 되어 다시 만났습니다. 이번 만남은 저와 형에게 너무나 소중한 추억들을 소환하고 새로운 추억을 다시 만드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포항에 있는 동생도, 살아계신 어머님도,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사랑하는 엘드림가족 여러분, 시간이 더 가기전에 함께했던 사랑하는 이들과의 추억을 공유 하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 그래서 그 추억들로 인한 행복을 누리는 가을이 되기를 바랍니다.
2024년 11월10일 엘드림교회 백성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