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달, 세 자녀가 모두 흩어져 있었습니다. 하빈이는 한학기 동안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둘째는 워싱턴 DC에서 1년간 공부를 마치고 방학 두 달간 태국으로 선교를 떠나 있었지요. 막내 하준이는 학기를 마치고 한달간 큰 누나가 있는 한국에 다니러 갔습니다. 그렇게 각자의 삶에서 주어진 일들과 만남들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달리는 시간을 보내고, 지난 수요일부터 배, 버스, 비행기, 기차를 타고 먼 길을 돌아 온 가족이 다시 모였습니다.
저는 삼형제 중에 둘째입니다. 제가 7살 되던 해에 아버지께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공무원 생활을 그만 두고, 시골 담임전도사로 부임해 가셨습니다. 그 시절 저희 삼형제는 너무 기대가 되었습니다. 시골에서 산다는 것도 기대가 되었지만, 태어나 자랐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간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고 좋았지요. 아버지가 부임하신 곳은 경상북도 영천군 대창면 소재에 있는 “대창교회”였습니다. 처음 저희 눈에 들어왔던 것은 논밭으로 둘러 쌓인 길 변 낮은 담장의 아담한 건물의 교회였는데, 마당 안쪽에는 철탑으로 세워진 십자가 종탑과 사택으로 사용될 초가집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다섯식구가 함께 예배하고 울고 웃으며 제 유년시절의 소중한 추억이 남겨졌지요.
한국에서 하빈이와 하준이가 양가의 가족들을 만나고 돌아와 들려준 에피소드들을 통해, 잊고 지냈던 가슴 따뜻한 옛 추억들이 되살아났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25세에 군대 제대 이후 로는 형제간의 기억이나 추억이 제게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함께 뒹굴던 추억이 반백년 중에 반도 없다니!’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형님은 그즈음 결혼을 했고, 저는 서울로 전도사 사역을 떠났고, 동생은 군복무 중이었더라구요. 그 이후로는 제가 결혼을, 동생은 운동과 공부를 겸하다 결혼을 했고, 곧 이어 저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왔기에 함께 공유하는 삶의 기억이 거기에 멈추어져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이후 제게 새로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채워진 추억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부모와 형제를 떠나 아내와 자녀들이 함께한 시간들이 또 다시 반백년의 반이 되었네요.
삶의 자리를 뒤돌아 보면, 좋건 싫건 모든 순간이 누군가와의 기억과 추억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어떤 기억을 버리고 어떤 기억을 간직하느냐 하는 것은 각자의 선택에 달렸지만, 인생에게 허락하신 희노애락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든 자라고 성장하며 소중한 기억을 머금고 성숙해져 갑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만남도 헤어짐도, 기쁨도 슬픔도, 설렘도 그리움도 지나고 보면 다 이유가 있었구나 싶습니다.
오늘, 나의 가족은 누구인가요? 누구와 어떤 추억을 쌓아가고 있나요? 우리는 매주 목장과 주일 예배를 통해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자주 만나고, 식탁교제를 나누고 함께 기도하지요. 저는 소망합니다. 여기 & 지금, 엘드림에서 만난 우리가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 서로의 필요를 채우고 사랑을 나누며 함께 믿음의 여정 든든히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어진 시간에 감사함으로 후회없이 사랑하고 서로를 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훗날 서로가 미소로 추억할 수 있는 오늘이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합니다. 엘드림 가족 여러분!
2024년 7월21일 주 안에서 한 가족 된, 백성지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