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선교대회 중에 잠시 시간을 내어, 제가 초등학교 때 저의 선친께서 목회하셨던 지역에 다녀왔습니다. 감사하게도 이번 선교대회가 경주 보문단지에서 열렸고, 제가 살았던 곳은 보문단지를 지나 산 하나만 넘으면 되는 외딴 동네인 “암곡”이어서 가능했지요. 어렸을 때는 하루에 2번 있는 버스를 타고 경주 시내로 한번 가려면 하루 일정으로 다녀와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도로가 잘 구비되어 있어서 20분이면 그 곳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암곡은 저의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목회의 심혈을 기울였던 곳입니다. 처음 청빙을 받아간 그 곳은 말 그대로 시골 중에 시골이었다고 합니다. 교회 천정 지붕이 낡아서 하늘에 별이 보였고 사택에서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부모님께서는 짐을 풀기도 전에 청소하신다고 첫날을 교회에서 보내셨습니다. 그렇게 열악한 교회를 두고 아버지께서는, “하나님의 성전이 돼지우리 보다 못하니, 하나님의 성전을 세워야겠다”라는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 성도가 많지 않았던 암곡교회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전국 교회에 이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여, 아름답고 튼튼한 교회당을 지으셨습니다. 이후에 그 외딴 동네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 믿고 세례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 동네 40명의 초등학교 학생 중에 30여명이 주일학교를 다니게 되고, 동네 주민들이 모여 들어 매주일이마다 교회가 잔치장소가 되었습니다.
40년의 세월이 지나 도로도 닦이고 환경도 좋아졌지만, 이제 암곡교회에는 어른 성도 4-5명과 어르신 10여명이 남아 교회를 지키고 계신다고 합니다. 제가 잠시 방문한 이후, 소식을 듣고는 저와 저의 어머님을 간곡히 찾으신다는 91세되신 권사님과 아들 장로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모가 되신 권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계셨을 때 참 행복하고 즐거웠심더...목사님의 헌신이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 주었고, 우리가 다 행복했심더…” 지금은 경주시내의 교회를 섬기고 계시는 아들 장로님도 옛 시절을 추억하며 말씀하셨지요. “저는 그때 목사님으로부터 기도훈련과 리더쉽을 배워 지금도 교회공동체를 잘 세워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니 건물도 사람도 사라져 가지만, 남겨진 이들에게서 듣는 믿음의 추억을 되새기며 먹먹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미국 돌아오기 전날 밤, 20년 전 고등부에서 가르쳤던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늦은 시간임에도 제가 서울에 있는 동안 잠시 머물던 선교관으로 한 명 두 명 찾아드는 모습이 어찌나 반가운지. 고등부 33대 기수로, 말썽많고 탈도많았던 고딩들이 어느새 다들 바쁘게 살아가는 38세 된 중년이 되었더라구요. 그 중 세아이의 엄마가 된 자매가 제게 개인 메세지를 보내왔습니다. “목사님, 저희는 그 시절 넘치는 사랑을 받아서 더 삐뚤어지거나 엇나가지 않았고, 또 자라면서 목사님께 받았던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잘 흘러보낼 수 있었기에 참 복받은 댓수구나 늘 생각 한답니당~” 문자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습니다. 보람된 목회를 했구나…싶었습니다.
분주한 일정에 여러 미팅들을 진행하고, 많은 분들을 만나며 숱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지만, 역시 제게 가장 감동이 되는 것은, 삶의 변화를 경험한 분들의 진심어린 간증을 들을 때입니다. 이제 다시 목회의 현장, 선교의 현장을 마주합니다. 서둘러 천국가신 제 아버지께서 하나님 앞에서 공의와 성실과 정직함으로 살아내셨던 것처럼, 저도 그렇게 살아가리라 다시 다짐해 봅니다. 10일간의 고국방문을 통해 더욱 소중함을 느끼는 엘드림가족 여러분, 사랑합니다.
2025년 6월 22일 엘드림을 사랑하는 백성지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