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부턴가 가족을 소개할 때 반려견, 갈갈이를 함께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영어 이름은 “헤이즐”인데, 털색이 갈색이어서 “갈갈이”라고도 부릅니다. 갈갈이는 생후 3개월에 우리집에 와서 저희 가족과 함께 거의 13년을 살았습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쉬고 있던 어느 날, 띵동~ 하는 소리를 듣고 현관 문을 열었더니, 둘째 하원이 친구와 엄마가 문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 엄마의 손에는 작고 예쁜 강아지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사실은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지만, 아내의 강력한 반대로 집에서는 강아지 이야기도 못 꺼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둘째가 친구 집에 갔다가 예쁜 강아지가 여럿 태어난 것을 보고, 강아지를 너무 키우고 싶은데 엄마가 반대한다고 이야기를 꺼낸 모양입니다. 그랬더니 친구의 엄마가 “혹시 아빠는 어떤 생각이니?” 라고 묻고는 “집에서 엄마 아빠 중에 한 사람만 괜찮다고 하면 키울 수 있단다.” 하면서, 주일날 오후에 강아지를 배달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나 봅니다. 그리고는 현관으로 직접 소개된 작고 예쁜 강아지를 거절할 수 없었던 아내의 승락으로 갈갈이는 우리가족의 반려견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제가 열심을 다해 섬기던 사역을 잠시 내려놓고 다음 스텝을 준비하며 쉼을 가지는 시기였는데, 반려견 갈갈이는 새벽마다 동네를 돌며 기도하는 시간에 늘 함께하는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또 다시 사역을 시작하게 되어 분주할 때도, 어린 자녀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소란할 때도, 가까운 곳을 방문하거나 먼 곳을 다녀온 오후에도 함께 산책을 하고 교감을 나누며 지낸 시간이 어느덧 13년이 되었습니다.
갓 태어나 만난 어린 강아지가 이제는 노견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나이로 계산하면 70-74세 정도 되는 나이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예전과 같이 않게 잠을 더 많이 자고 쉽게 다치기도 합니다. 지난주에 인적이 없는 앞 마당 호수가에 갈갈이를 풀어 놓았는데, 평소처럼 쏜살같이 뛰어나가다가 뒷다리를 접질렸던 모양입니다. 그 이후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뛰지도 못하는 것을 보는데 마음이 이상하게 미안하고 불편하더라구요. 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어서 한 자리에 엎드려 있는 것을 보는데 어찌나 속상한지…미국 이민생활의 반 이상을 함께 했던 생명인데, 어느새 우리 다섯 가족에 함께 포함되는 존재가 되었는데, 그러고 웅크리고 있는 것을 그저 보고 있을 수 만은 없어서 계단을 오르내릴 때 제가 안아서 도와주고, 시간이 날때마다 손으로 다리를 만져주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에 설교말씀을 준비할 때는, 사도행전 3장의 말씀을 보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는 구절을 품고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기도 했지요.
갈갈이 뒷다리를 만지며, “금과 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말 못하는 강아지인 너도 힘을 내어 걸어봐, 네가 낫기를 원한단다’ 하고 기도해줬는데 감사하게도 이제는 뛰어다닙니다^^ 웃음이 나지요?
너무 사역적인 이야기만 하는 칼럼이 되지 않기 위해서 저의 소소한 일상을 나눠봅니다. 주님은 늘 우리에게 웃음을 주십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의 기도를 멸시치 않으시고 작은 일에도 하나님이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하십니다. 우리의 일상을 채우는 수 많은 사건사고들 속에서 수없이 이어지고 확장되는 삶의 소식들을 듣게 될 때마다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말없이 제 곁을 지켜온 갈갈이가 이런 제 맘을 알리 없지요. 자연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가깝게 느끼게 하니 그게 고마울 뿐입니다.
2025년 3월 23일 평범한 삶을 사는 백성지 목사